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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께서 삶에 대한 의지를 포기하시다

붓다께서 마지막 우안거(vassa, 왓사)를 웰루와 마을에서 보내셨습니 다. 그때 붓다께 심한 고통이 생겼습니다. 아살하(Āsāḷhā, 육~칠월) 보름 날에 전생의 업으로 등에 날카롭고 극심한 통증이 엄습했습니다.

사꺄무니 붓다(Sakyamuni Buddha, 석가모니 부처님)가 되신 보디삿따 (Bodhisatta, 미래붓다)는 전생의 한 삶에서 레슬링 선수였습니다. 한때 그는 상대를 던지고 그의 등을 부러뜨렸습니다. 불선업(akusala·kamma, 아꾸살라 깜마)이 무르익자 과보가 생겨났습니다. 그때가 사꺄무니 붓다 의 빠리닙바나(Parinibbāna, 최종열반) 열달 전이었습니다. 그 업의 과보는 매우 강력하여 죽을 때까지 지속될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고통을 ‘죽을 때 끝나는 느낌(maraṇ·antika·vedāna, 마라난띠까 웨다나)’이라고 부릅니 다. 그것은 오직 죽어야 그치는 것입니다.

붓다께서는 그 고통이 일어나는 것을 아라한과에 들어가셔서 결의 (adhiṭṭhāna, 아딧타나)하여 막았습니다. 먼저, 붓다께서는 물질 일곱 가지 방법(rūpa·sattaka·vipassanā, 루빠삿따까 위빳사나)과 정신 일곱 가지 방법 (a·rūpa·sattaka·vipassanā, 아루빠삿따까 위빳사나)의 토대 위에 아라한과 증득(Arahatta·Phala·Samāpatti, 아라핫따팔라 사마빳띠)에 들어갔습니다. 그러한 위빳사나 수행을 하고 나서 아라한과 증득에 들어가기 직전에 붓다께서는 결심을 하셨습니다.

오늘부터 나의 빠리닙바나(Parinibbāna, 최종열반) 날까지 이 고통이 일어나지 않기를.

그런 다음 붓다께서는 아라한과 증득에 들어갔습니다. 아라한과 증 득은 닙바나(Nibbāna, 열반)를 대상으로 오랫동안 일어나는 아라한과 마음입니다. 위빳사나(vipassanā, 통찰) 수행은 강력하므로 아라한과 역시 강력합니다. 위빳사나 정진과 과 증득의 노력으로 붓다의 빠리닙바나(Parinibbāna, 최종열반) 날까지 열 달 동안 고통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붓다께서는 빠리닙바나까지 아라한과에 매일 들어가셔야 했습니다.

우안거(vassa, 왓사) 후에 붓다께서는 여기 저기 유행하시다가 마침내 웨살리에 당도하셨습니다. 짜빨라(Cāpāla) 쩨띠야(Cetiya, 성소, 영묘탑)에 서 이월 보름, 웨사카(Vesākha, 사~오월) 보름 석달 전에 붓다께서는 삶의 의지를 포기(āyu·saṅkhāra ossajjana, 아유상카라 옷삿자나)하셨습니다. 무 슨 뜻입니까? 그날 붓다께서는 결정하셨습니다.

떼마사맛따메와 빠나 사마빳띵 사마빳지뜨와 따또
Temāsamattameva pana samāpattiṃ samāpajjitvā tato

빠랑 나 사마빳짓사미띠 찟땅 웁빠데시.
paraṃ na samāpajjissāmīti cittaṃ uppādesi.

오늘부터 웨사카 보름날까지 나는 이 과 증득을 수행할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과 증득을 더 이상 수행하지 않을 것이다.

붓다께서 당신의 바람을 공표하시다

그래서 그날 마하와나 승원 집회장(법당)에 모인 빅쿠 상가 앞에서 붓다께서는 삶의 의지를 포기하셨다고 알리셨습니다. 붓다께서는 빅 쿠 상가에 말씀하셨습니다.

따스마띠하 빅카웨 예 떼 마야 담마 아빈냐 데시따,
Tasmātiha bhikkhave ye te mayā dhammā abhiññā desitā,

떼 워 사두깡 욱가헤뜨와 아세위땁바 바웨땁바 바훌리까땁바.
te vo sādhukaṃ uggahetva āsevitabbā bhāvetabbā bahulīkātabbā.

빅쿠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내가 지닌 곧바로 아는 지혜를 설했다. 그것들을 철저히 배워서 연마하고 계발하고 수시로 수행해야 한다.

붓다께서는 그분이 직접 경험한 법만 설하십니다. 여기 붓다께서는 그분의 가르침에 대한 바람을 선언하시고 다음과 같이 상가를 지도하셨습니다.

1) 그들은 붓다의 가르침(Dhamma, 담마)을 철저히 외워야 합니다. 하지만 외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붓다의 첫 번째 바람이었습니다.
2) 붓다께서는 그분의 가르침(담마)을 연마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빠알리로 이것을 아세위땁바(āsevitabbā)라고 하는데 이 담마를 반 복적으로 수행해서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연마로 번역되었습니다. 이것이 붓다의 두 번째 바람이었습니다.
3) 마지막으로 그분은 진리를 계발(bhāvetabbā)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우리가 연마할 때 성장과 진보가 필요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담마(Dhamma, 법)를 수행할 때 오직 선법(kusala dhamma, 꾸살라 담마)만이 우리의 인식과정에 일어나야 합니다. 즉 지계 선법(sīla kusala dhamma, 실라 꾸살라 담마), 삼매 선법(samādhi kusala dhamma, 사마디 꾸살라 담마), 지혜 선법(paññā kusala dhamma, 빤냐 꾸살라 담마)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 선업은 아라한이 될때까지 중단 없이 일어나야 합니다. 붓다의 제자(sāvaka, 사와까)가 아라한을 증득하면 그의 수행(bhāvanā, 바와나)은 끝납니다. 이와 같이 붓다의 제자는 목표를 성취할 때까지 붓다의 가르침을 수행해야 합니다. 즉 아라한이 될 때까지 가르침을 연마하는 것이 향상되어야 합니다. 아라한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반복해서 수행해야만 합니다. 그런 이유로 붓다께서는 ‘바훌리까땁바’(bahulīkātabbā)의 가르침을 설하셨는데, 자주 반복해서 수행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붓다의 세 번째 바람이었습니다.

이러한 바람이 붓다의 인식과정에 일어났습니다. 왜 일어났을까요?

야타이당 브라흐마짜리양 앗다니양 앗사 찌랏티띠깡.
Yathayidaṃ brahmacariyaṃ addhaniyaṃ assa ciraṭṭhitikaṃ.

이와 같이 순수한 가르침이 확립되어서 오래 지속되기를.

즉 순수한 가르침이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도록 그것을 보존하는 것입니다.

불자로서 우리의 의무

모든 불자들이 순수한 가르침을 유지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면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시도해야 합니다. 무엇을 시도해야 할까요? 되풀이하여 말합니다.

1) 우리는 붓다의 가르침(Dhamma, 담마)을 철저히 외워야 합니다.
2) 우리는 붓다의 가르침을 개인적인 경험으로 알기 위해서 수행해야 합니다.
3) 우리는 아라한이 될 때까지 붓다의 가르침을 수행해야 합니다.

이상이 모든 불자들의 의무입니다. 자신이 불자라면 이 세 가지 가르침을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이들을 따르지 않으면 이름만 불자 이지 진정한 불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은 결심할 수 있습니다.

1) 우리는 붓다의 가르침을 철저히 외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 우리는 붓다의 가르침을 개인적인 경험으로 알기 위해서 수행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3) 우리는 아라한이 될 때까지 붓다의 가르침을 수행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세상을 어떻게 이롭게 할 것인가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붓다의 바람에 따라서 숨을 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할까요?

따닷사 바후자나히따야 바후자나수카야 로까누깜빠야
Tadassa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앗타야 히따야 수카야 데와마눗사낭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ṃ.

많은 이들의 복리와 행복을 위하여,
세상에 대한 연민으로, 천신과 인간의 복리와 행복을 위하여.

우리가 붓다의 바람에 따라 수행한다면 담마(Dhamma, 법)를 미래 세대에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천신과 인간들에게 다음 과 같이 가르칠 수 있습니다.

1) 붓다의 가르침을 철저히 외우려고 노력하는 것.
2) 붓다의 가르침을 개인적인 경험으로 알기 위해서 수행하는 것.
3) 아라한이 될 때까지 붓다의 가르침을 수행하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천신들과 인간들은 이 세상에서 닙바나(Nibbāna, 열반)를 얻을 때까지 이익과 행복을 얻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 르침을 외우지 않고 그 가르침을 수행하지 않으면 가르침에 대한 앎 이 없는데, 어떻게 우리가 천신과 인간들이 붓다의 가르침을 배우고 수행할 수 있도록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붓다의 가르침에 충분히 강한 믿음(saddhā, 삿다)이 있다면 우리 불자들은 그 가르침들을 암기하도록 노력하고 수행하여 연마하고 아라한이 될 때까지 계발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심을 어떻게 보여 줄 것인가

여러분은 붓다의 가르침에 강하고 충분한 믿음이 있습니까? ‘가띠까라 경’ 주석서에 나와 있기를

빠산노 짜 빠산나까랑 까뚱 삭킷사띠.
Pasanno ca pasannākāraṃ kātuṃ sakkhissati.

삼보에 진정으로 헌신하는 사람은 수행으로 그들의 헌신을 보여줄 수 있다.

남자나 여자가 헌신을 보여줄 수 없으면 그 사람을 진정으로 헌신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붓다의 가르침에 진정한 믿음이 있다면 그 가르침을 철저히 배우고 수행하고 아라한이 되기 전에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붓다께서 열반하시기 전에 하신 중요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붓다에 대한 신심이 있으면 이 말씀에 복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부모님에게 믿음이 있으면 그분들의 가르침에 복종해야 합니다. 같은 식으로 우리는 우리의 아버님이신 붓다의 말씀에 복종해야 합니다.

반드시 배우고 수행해야 할 일

그러면 어떠한 가르침들이 있습니까? 그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네 가지 알아차림 확립(Cattāro Sati·Paṭṭhānā, 짯따로 사띠빳타나)
  • 네 가지 바른 노력(Cattāro Samma·Ppadhānā, 짯따로 삼맙빠다나)
  • 네 가지 성취 토대(Cattāro Iddhi·Pādā, 짯따로 잇디 빠다)
  • 다섯 가지 조절기능(Pañc·Indriyāni, 빤찐드리야니)
  • 다섯 가지 힘(Pañca Balāni, 빤짜 발라니)
  • 일곱 가지 깨달음 요소(Satta Bojjhaṅgā, 삿따 봇장가) ∙ 팔정도(Ariyo Aṭṭhaṅgiko Maggo, 아리요 앗탕기꼬 막고)

모두 37가지 깨달음의 필수품(Bodhi·pakkhiya·dhamma, 보디빡키야 담마)이 있습니다. 그들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겠습니다. 빠알리(Pāli) 경전 에는 붓다께서 청중의 성향에 따라 서로 다른 식으로 37가지 깨달음의 필수품을 가르치셨습니다. 빠알리 경전의 가르침은 37가지 깨달음의 필수품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그들을 요약하면 팔정도입니다. 팔정도를 요약하면 단지 계, 정, 혜 삼학입니다.

수행의 토대

우리는 먼저 계학 수행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계를 닦는 것을 모르면 우리의 행위를 정화할 수 없습니다. 다음 우리의 마음을 제어하고 집중하기 위해 사마타(samatha, 고요, 삼매수행) 명상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사마타 명상을 모르면 어떻게 집중력을 연마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삼매를 수행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제어할 수 있겠습니까? 다음 우리는 지혜를 연마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혜학을 모르면 어떻게 지혜를 연마할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우리의 행위를 정화하고 마음을 제어하고 지혜를 함양하 기 위해서 먼저 법을 외워야 합니다. 두 번째로, 아라한이 될 때까지 법을 연마하고 계발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마하빠리닙바나 숫따’(Mahā·Parinibbāna Sutta, 대열반경)에 서 붓다께서 제자들에게 여러 번 역설하셨습니다.

이띠 실랑, 이띠 사마디, 이띠 빤냐.
Iti sīlaṃ, iti samādhi, iti paññā.

실라빠리바위또 사마디 마합팔로 호띠 마하니상소,
Sīlaparibhāvito samādhi mahapphalo hoti mahānisaṃso,

사마디빠리바위따 빤냐 마합팔라 호띠 마하니상사.
samādhiparibhāvitā paññā mahapphalā hoti mahānisaṃsā.

빤냐빠리바위땅 찟땅 삼마데와 아사웨히 위뭇짜띠,
Paññāparibhāvitaṃ cittaṃ sammadeva āsavehi vimuccati,

세이야티당 까마사와 바와사와 딧타사와 아윗자사와.
seyyathidaṃ kāmāsavā bhavāsavā diṭṭhāsavā avijjāsavā.

이러한 것이 계(sīla, 실라)다. 이러한 것이 삼매(samādhi, 사마디)다. 이러한 것이 지혜(paññā, 빤냐)다.

계(sīla)에 기초하여 삼매(samādhi)가 완전히 계발되면 대단한 결실과 이익이 있다.

삼매에 기초하여 지혜(paññā)가 완전히 계발되면 대단한 결실과 이익이 있다.

마음이 지혜(paññā)로 완전히 계발되면

감각적 쾌락의 번뇌(kām·āsavā, 까마사와),
존재의 번뇌(bhav·āsavā, 바와사와),
사견의 번뇌(diṭṭh·āsavā, 딧타사와),
무명의 번뇌(avijj·āsavā, 아윗자사와)

로부터 전적으로 자유로워진다.

우리 모두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계에 토대를 두면 마음을 제어할 수 있고 그러면 그 집중된 마음은 경이적인 것입니다. 그 집중된 마음은 궁극적 물질을 꿰뚫을 수 있습니다. 물질은 루빠 깔라빠(rūpa kalāpa, 물질 미립자)로 일어납니다. 그들은 원자보다도 작습니다. 우리 몸은 그러한 루빠 깔라빠들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집중된 마음은 그러한 루빠 깔라빠들 을 분석할 수 있습니다. 집중된 마음은 또한 정신의 궁극적 실재를 꿰뚫을 수 있습니다. 집중된 마음은 정신-물질의 원인을 꿰뚫을 수 있습니다. 집중된 마음은 정신-물질, 그들 원인의 일어남과 사라짐의 본성을 꿰뚫을 수 있습니다. 이 위빳사나(vipassanā, 통찰) 지혜를 통찰지라고 합니다. 이 통찰지는 계에 바탕을 둔 삼매로 인해 향상하는 것입니다. 집중된 마음과 통찰지는 의지력입니다. 이 의지력은 닙바나(Nibbāna, 열반) 증득으 로, 모든 애착, 모든 번뇌, 모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각자 모두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이 집중력으로 완전히 연마되 면 위빳사나 지혜, 통찰지는 자신을 감각적 애욕의 번뇌와 윤회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해 줍니다. 그러나 그 집중력은 반드시 계에 토대를 두어야 합니다. 재가자는 오계가 필수적입니다. 오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살생을 삼가는 것
  2. 도둑질을 삼가는 것
  3. 그릇된 성행위를 삼가는 것
  4. 거짓말을 삼가는 것
  5. 술과 취하게 하는 음료 마심을 삼가는 것

이 오계는 모든 불자들에게 필수적입니다. 오계 중 하나라도 어기면 자동적으로 진정한 불자(upāsaka/upāsikā, 우빠사까/우빠시까, 청신사/청신녀)가 아닌 것입니다. 삼귀의가 무효로 됩니다. 불자는 반드시 그릇된 생계를 삼가야 됩니다. 불자는 살생으로, 도둑질로, 잘못된 성행위로, 거짓말로, 중상모략으로, 거친 말 또는 경박한 말로 얻은 재산을 사용 해서는 안 됩니다. 재가 불자는 무기거래, 인신매매, 도축용 동물 거래, 술과 정신을 흐리게 하는 것 거래, 독극물 거래 이 다섯 가지 잘못된 거래에 종사해서는 안 됩니다.

이와 같이 계는 닙바나(Nibbāna, 열반)를 얻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죽고 나서 행복한 세상에 나기 위해서라도 불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행위가 정화되지 않으면 죽고 나서 행복한 세상에 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죽는 시점에 잘못했던 행위가 대체로 마음에 고착되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그러한 잘못된 행위를 대상 으로 삼으면 죽어서 대체로 사악도 중 하나에 가게 됩니다. 계는 또한 현생에서 행복하고 평화롭게 사는데 중요합니다. 행위를 정화하지 않고 행복이나 평화를 찾을 수 없습니다. 나쁜 성격의 사람은 자연스럽게 적으로 둘러싸입니다. 적이 많은 사람은 어떤 행복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다음 붓다께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치셨습니다.

요 짜 왓사사땅 지웨, 둣실로 아사마히또,
Yo ca vassasataṃ jīve, dussīlo asamāhito.
에까항 지위땅 세이요, 실라완땃사 자이노.
Ekāhaṃ jīvitaṃ seyyo, sīlavantassa jhāyino.
지계 없이 삼매 없이 100년을 산다 한들, 그 삶은 칭송 받을 가치가 없다. 단 하루를 살더라도 계와 삼매를 수행하며 사는 것이 더 낫다.

왜 그렇습니까? 삼매로 완전히 연마된 마음은 탁월한 지혜를 생기게 합니다. 그 지혜는 닙바나(Nibbāna, 열반), 윤회의 끝을 볼 수 있게 하고 모든 번뇌와 괴로움을 없앨 수 있도록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계에 토대를 두어서 사마타(samatha, 고요, 삼매수행)와 위빳사나(vipassanā, 통찰)를 수행해야 합니다. 사마타와 위빳 사나 명상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네 가지 알아차림의 확립 (Cattāro Sati·Paṭṭhānā, 짯따로 사띠빳타나, 사념처)을 수행해야 합니다.

  1. 몸 관찰에 대한 알아차림 확립(kāy·ānupassanā satipaṭṭhāna, 까야누빳사나 사띠빳타나)
  2. 느낌 관찰에 대한 알아차림 확립(vedan·ānupassanā satipaṭṭhāna, 웨다나누빳사나 사띠빳타나)
  3. 마음 관찰에 대한 알아차림 확립(citt·ānupassanā satipaṭṭhāna, 찟따누빳사나 사띠빳타나)
  4. 법 관찰에 대한 알아차림 확립(dhamm·ānupassanā satipaṭṭhāna, 담마누빳사나 사띠빳타나)

무엇이 ‘몸(kāya, 까야)’입니까? 위빳사나에서는 물질 몸(rūpa kāya, 루빠 까야)과 정신 몸(nāma·kāya, 나마까야) 두 가지가 있습니다. 물질 몸은 28가지의 물질 집단입니다. 정신 몸은 마음과 그들의 연관된 마음부수의 집단입니다. 다른 말로, 두 가지 몸은 다섯 무더기(khandha, 칸다)인 데, 물질, 느낌, 지각, 형성(상카라), 식입니다. 하지만 숨, 부정(不淨)으로써 몸 32부분, 그리고 사대요소와 같은 사마타 명상 대상도 역시 몸이라고 부릅니다. 왜? 그들 역시 견고한 물질이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숨은 마음에서 생긴 루빠 깔라빠(rūpa kalāpa, 물질 미립자)의 집단입니다. 그 루빠 깔라빠를 분석하면 각 깔라빠 안에 아홉 가지 물질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땅, 물, 불, 바람 요소, 색깔, 냄새, 맛, 영양소, 소리입니다. 뼈 역시 견고한 루빠 깔라빠입니다. 살아있는 뼈라면 모두 다섯 가지 종류의 루빠 깔라빠가 있습니다. 그 루빠 깔라빠를 분석하면 44가 지 종류의 물질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몸 관찰에서 붓다께서는 사마타와 위빳사나, 두 가지 종류의 명상을 설하셨습니다. 몸 관찰(kāy·ānupassanā, 까야누빳사나)에 붓다 께서는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 들숨날숨에 대한 알아차림)와 몸 32부분 등을 포함시키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들숨날숨에 대한 알아 차림 수행을 한다면 몸 관찰 명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마타 수행은 몸 관찰 수행에 들어갑니다. 사마타 수행에 성공하고 난 후에 물질과 정신을 식별하고 분석하는 위빳사나 수행으로 바꿉니다. 물질 명상(rūpa·kammaṭṭhāna, 루빠 깜맛타나)을 할 때 28가지 물질을 식별하는데 이것 역시 몸 관찰 수행입니다. 정신 명상(nāma·kammaṭṭhān a, 나마 깜맛타나)을 할 때 느낌을 식별하는데 이것은 느낌 관찰(vedan·ān upassanā, 웨다나누빳사나)이고 마음 식별을 하면 마음 관찰(citt·ānupassan ā, 찟따누빳사나)이고 접촉을 식별하면 법 관찰(dhamm·ānupassanā, 담마누 빳사나)입니다. 그러나 단지 느낌, 마음, 접촉만 식별한다면 위빳사나 지혜를 얻는데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나머지 함께하는 정신 요소도 식별해야 합니다. 정신과 물질을 식별한 후에 과거, 현재, 미래의 원인을 식별해야 합니다. 이것이 조건을 파악하는 지혜(Paccaya·Pariggaha·ñāṇa, 빳짜야 빠릭가하 냐나)입니다. 조건을 파악 하는 지혜 후에 위빳사나에 도달하게 되면 물질, 느낌, 마음, 접촉 중 하나에 중점을 둘 수 있습니다. ‘중점을 둔다’는 것은 단지 하나의 상태 만 식별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물질에 중점을 둘 수는 있지만 정신을 생략해서는 안 됩니다. 즉 반드시 느낌, 마음, 법 역시 식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대신 느낌에 중점을 둘 수 있지만 느낌 홀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함께하는 마음부수, 감각토대, 그들의 대상 역시 식별해야 합니다. 다섯 감각토대와 그들의 대상은 물질입니다. 마음과 법도 똑같습니다.

이와 같이 이 점에서 위빳사나는 정신-물질과 그들 원인의 본성인 무상, 고, 무아를 관찰하는 것입니다. 그 법들은 일어나자마자 사라지므로 무상입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일어났다가 사라짐에 의해 압박을 받으니 괴로움입니다. 그 법들에는 영혼이 없고 안정성이 없고 영원하지 않고 불멸이 아니니 무아입니다.

정신-물질, 그들의 원인과 결과를 무상, 고, 무아로 식별하는 것을 위빳사나 명상이라고 합니다.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명상할 때 우리는 네 가지 알아차림 확립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네 가지 알아차림 확립을 수행할 때 네 가지 바른 노력(Cattāro samma- Ppadhāna, 짯따로 삼맙빠다나, 사정근)을 충분히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네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불선법이 일어나는 것을 막는 노력
  2. 일어난 불선법을 근절하려는 노력
  3.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선법을 일으키려는 노력(삼매 선법, 위빳사나 선법, 도 선법 등)
  4. 그러한 선법을 아라한이 될 때까지 연마하는 노력


어떻게 수행합니까? 네 가지 알아차림의 확립에 따라서 수행합니다. 수행할 때 방금 언급한 네 가지 노력을 충분히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살과 피가 말라버리고 뼈와 힘줄만 남더라도 명상을 멈추지 않으리라.’

수행할 때 네 가지 성취토대(Cattāro iddhi·pādā, 짯따로 잇디빠다, 사여의족)가 있어야 합니다.

  1. 열의(chanda, 찬다): 닙바나(Nibbāna, 열반)에 도달하려는 굳세고 강력한 열의를 가져야 합니다.
  2. 정진(vīriya, 위리야): 닙바나에 도달하려는 굳세고 강력한 정진력이 있어야 합니다.
  3. 마음(citta, 찟따): 닙바나에 도달하려는 굳세고 강력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4. 조사(vimaṃsa, 위망사): 닙바나에 도달하려는 굳세고 강력한 위빳사나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강한 열의가 있으면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충분한 열의가 있으면 성취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강하고 충분한 정진이 있으면 목적을 달성할 것입니다. 충분한 정진을 하면 성취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충분하고 강한 마음이 있으면 목적을 성취할 것입니다. 굳세고 강렬한 마음이 있으면 성취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강하고 충분한 위빳사나 지혜가 있으면 목적을 달성할 것입니다. 충분히 강한 지혜가 있으면 성취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네 가지 알아차림의 확립을 수행할 때 다섯 조절기능(pañc·indriyāni, 빤찐드리야니, 오근) 역시 있어야 합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신심(saddhā, 삿다): 붓다와 그분의 가르침에 충분히 강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2. 정진(vīriya, 위리야): 충분히 강한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3. 알아차림(sati, 사띠): 명상 대상에 충분히 강한 알아차림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사마타 대상이면 아나빠나 니밋따(ānāpāna nimitta, 들숨날숨 표상)나 까시나 니밋따(kasiṇa nimitta, 까시나 표상)와 같은 것이라야 합니다. 위빳사나 대상이라면 정신-물질과 그들의 원인이어야 합니다.
  4. 삼매(samādhi, 사마디): 사마타와 위빳사나 대상에 대한 충분히 강한 삼매가 있어야 합니다.
  5. 지혜(paññā, 빤냐): 사마타와 위빳사나 대상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있어야 합니다.

이 다섯 가지 조절기능은 수행자의 마음을 제어하므로 마음은 닙바나로 인도하는 팔정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조절기능 중에 하나라도 없으면 목표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마음을 제어할 수 없습니다. 이 조절 기능은 마음을 제어할 힘을 가지고 있으므로 마음은 명상 대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 힘은 또한 의지력(bala, 발라)이라 고도 불립니다. 의지력의 관점에서 보면 조절기능은 다섯 가지 힘 (pañca balāni, 빤짜 발라니, 오력)으로 불립니다.

네 가지 알아차림의 확립 이외에 역시 매우 중요한 일곱 깨달음의 요소(Satta·Bojjhaṅgā, 삿따 봇장가, 칠각지)가 있습니다. 그것들은

  1. 알아차림(sati, 사띠)
  2. 법을 변별함(dhamma·vicaya, 담마위짜야): 이것은 위빳사나 지혜입니다.
  3. 정진(vīriya, 위리야)
  4. 희열(pīti, 삐띠)
  5. 경안(passaddhi, 빳삿디)
  6. 삼매(samādhi, 사마디)
  7. 평정(upekkhā, 우뻭카)

마지막으로, 팔정도(Ariyo Aṭṭhaṅgiko Maggo, 아리요 앗탕기꼬 막고)가 있습니다.

  1. 바른 견해(Sammā·Diṭṭhi, 삼마딧티)
  2. 바른 사유(Sammā·Saṅkappa, 삼마상깝빠)
  3. 바른 말(Sammā·Vācā, 삼마와짜)
  4. 바른 행위(Sammā·Kammanta, 삼마깜만따)
  5. 바른 생계(Sammā·Ājīva, 삼마아지와)
  6. 바른 노력(Sammā·Vāyāma, 삼마와야마)
  7. 바른 알아차림(Sammā·Sati, 삼마사띠)
  8. 바른 삼매(Sammā·Samādhi, 삼마사마디)

다른 말로 계(sīla, 실라), 정(samādhi, 사마디), 혜(paññā, 빤냐) 삼학입니다. 우리는 이 삼학을 체계적으로 수행해야 합니다.

모두 합하여 37가지 깨달음의 필수품(bodhi·pakkhiya·dhamma, 보디빡 키야 담마)이 있습니다. 붓다께서 바라시는 바는 당신의 제자들이 이 37가지 깨달음의 필수품을 암기하여 아라한이 될 때까지 수행하는 것이 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면 이 유산을 미래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와 미래 세대는 이 세상에서 닙바나(Nibbāna, 열반)를 증득할 때까지 이익과 행복을 얻을 것입니다.

상가(Sangha, 승가)에 대한 붓다의 간곡한 권고

붓다께서는 더 나아가서 말씀하십니다.

한다 다니, 빅카웨, 아만따야미 워,
Handa dāni, bhikkhave, āmantayāmi vo,
와야담마 상카라 압빠마데나 삼빠데타
vayadhammā saṅkhārā appamādena sampādetha
빅쿠들이여, 이제 나는 그대들에게 권고하나니,
모든 조건 지어진 것은 소멸하는 것이다. 부지런히 정진하라!


모든 정신-물질과 그들의 원인은 상카라(saṅkhāra, 조건 지어진 것)라고 하는데 그들 각각의 원인에 의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상카라는 항상 무상합니다.
무상의 본성에 대하여 잊어서는 안 됩니다. 무상의 본성에 대하여 잊어버리기 때문에 자신, 아들, 딸, 가족 등에 열망하는 것입니다. 무상의 본성에 대하여 무언가를 안다면 일생을 통하여 그것으로부터 벗어 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니 붓다께서 우리에게 하신 권고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빅쿠들이여, 이제 나는 그대들에게 권고하나니 모든 조건 지어진 것은 소멸하는 것이다. 부지런히 정진하라!’

그런 다음 붓다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 찌랑 따타가땃사 빠리닙바낭 바윗사띠.
Na ciraṃ Tathāgatassa Parinibbānaṃ bhavissati.
이또 띤낭 마사낭 앗짜예나 따타가또 빠리닙바잇사띠.
Ito tiṇṇaṃ māsānaṃ accayena Tathāgato parinibbāyissati.
여래의 빠리닙바나(Parinibbāna, 최종열반)가 가까워진다.
지금부터 석 달 후에 여래는 빠리닙바나에 들 것이다.


이것은 붓다께서 완전히 불멸(佛滅)에 드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한 말씀은 듣기에 정말 슬픈 말씀인 것입니다. 붓다께서 또 말씀하십니다.

빠리빡꼬 와요 마이항 빠릿땅 마마 지위땅.
Paripakko vayo mayhaṃ, parittaṃ mama jīvitaṃ.
나는 이제 나이가 들어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

붓다께서는 당신의 늙음을 아난다 존자에게 설명하십니다.

아난다여, 이제 나는 연약하고 늙었고 노년이고 쇠약할 대로 쇠약해졌다. 이제 내 나이가 팔십이고 삶은 다 지나갔다. 아난다여, 낡은 마차가
힘겹게 서로 붙어있듯이 여래의 몸도 의지해야 겨우 지속할 수 있구나. 아난다여, 외부 대상은 상관하지 않으면서 분명한 느낌의 소멸과 함께 여래가 표상 없는 마음의 집중을 증득하여 머물 때에만 그의 몸은 편안하다.

붓다께서는 더 나아가서 말씀하십니다.

빠하야 워 가밋사미, 까땅 메 사라나맛따노.
Pahāya vo gamissāmi, kataṃ me saraṇamattano.
간다. 나는 그대를 떠나간다. 오직 나 자신만을 의지하면서.


이것은 붓다께서 빠리닙바나(Parinibbāna, 최종열반)에 들 것이며 그들 을 떠난다는 뜻입니다. 붓다께서는 아라한이 될 때까지 당신 자신을 의지처로 삼으신 것입니다.

빅쿠(Bhikkhu, 비구)들에 대한 붓다의 교계

그래서 붓다께서 또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아난다여,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의지처로 삼아 외부에서 의지처를 구하지 않고, 법을 그대의 섬으로 삼고, 법을 그대의 의지처로 삼아 다른 것을 의지처로 구하지 말라.
그러면 아난다여, 빅쿠는 어떻게 그 자신을 섬으로 삼고 그 자신을 의지처로 삼아 외부에서 의지처를 구하지 않고, 법을 그의 섬으로 삼고 법을 그의 의지처로 삼아 다른 것을 의지처로 구하지 않는가?

붓다의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압빠맛따 사띠만또 수실라 호타 빅카워.
Appamattā satimanto susīlā hotha bhikkhavo.
수사마히따상깝빠 사찟따마누락카타.
Susamāhitasaṅkappā sacittamanurakkhatha.
오, 빅쿠들이여, 부지런하라. 알아차림하고 계를 청정히 하라. 확고한 결심으로 그대의 마음을 수호하라.

수실라 호타 빅카워(Susīlā hotha bhikkhavo)는 ‘빅쿠들이여, 그대의 행위를 정화하도록 노력하라. 행위를 완벽히 정화하는 빅쿠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계학을 연마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계학은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입니다.

수사마히따상깝빠(Susamāhita·saṅkappā)에서 수사마히따(Susamāhita) 는 정학(선정)을 연마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정학은 바른 노력, 바른 알아차림, 바른 삼매입니다. 상깝빠(saṅkappā)는 혜학을 뜻합니다. 혜학은 바른 견해와 바른 사유입니다.

압빠맛따(Appamattā)는 상카라(조건 지어진 법)에 대한 무상, 고, 무아의 본성을 위빳사나 지혜로 본다는 뜻입니다.
사띠만또(Satimanto)는 계, 정, 혜 삼학을 연마할 때 충분한 알아차림 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알아차림하고 부지런해야 합니다. 무엇에 대한 알아 차림입니까? 네 가지 알아차림의 확립, 정신-물질에 대한 알아차림, 또는 다른 말로 상카라(조건 지어진 법)에 대하여 알아차림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붓다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 이마스밍 담마-위나예 압빠맛또 위헷사띠.
Yo imasmiṃ dhamma-vinaye appamatto vihessati.
빠하야 자띠상사랑 둑캇산땅 까릿사띠.
Pahāya jātisaṃsāraṃ dukkhassantaṃ karissati.
법과 율을 진지하게 추구하는 사람은 누구나 윤회를 넘어서고 괴로움을 끝낼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윤회를 끝내려면 붓다의 가르침을 따라야만 합니다. 즉 그 가르침은 팔정도입니다. 죽음이 오기 전에 열심히 노력합시다. 모든 존재들이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파욱 사야도 냐냐닷사나(앎과 봄) 5판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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