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자에 의한 찬탄되는 방식으로 각 개인의 인격을 향상하기 위해 삶 속에서 이 사무량심(brahmavihārā)을 수행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극단으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사무량심을 수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조화로운 마음으로 살기 위해 사무량심의 특성이 필요합니다.
사무량심을 어떻게 수행하는지 아는 사람은 진정으로 그들 자신과 다른 사람을 이익 되게 할 수 있습니다. 소수의 사람만이 그들 자신과 다른 사람 모두를 이롭게 하는 법을 압니다. 왜냐하면 그들만이 자신들의 일상생활 가운데 사무량심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자애’는 앞의 질문에서 설명해 드렸습니다. 기억나세요? 자애는 나 자신과 다른 이들의 이익을 위해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대로 다른 이의 이익을 위해 행하는 것은 진정한 자애가 아닙니다. 또한 ‘내가 주고 싶은 것을 줌으로써 다른 이들의 이익을 위해 일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도 진정한 자애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자애는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것, 필요로 하는 것, 그 사람의 약점과 장점을 조심스럽세 살펴본 후 그들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이것들을 고려해야만 합니다. 그런 다음 그들의 필요에 따라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만일 그들이 무엇을 하고 무엇이 되었으면 하는 우리의 기대에 너무 강조점을 둔다면 우리와 그들 사이에 갈등이 생길 것입니다.
부모님들은 자신의 자녀에게 자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 대부분의 부모님은 그들의 아들이나 딸이 이러하고 저러하기를 바랍니다. 이것들은 자녀를 향한 좋은 희망입니다. 그러나 자녀가 이러하거나 저러하기를 바란다 해도 조심스럽게 살펴야만 합니다. 자녀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지를 조심스럽게 살펴본 후 그들이 무엇이 되기를 바란다면 매우 좋습니다. 부모님드은 이러한 방식으로 자녀를 도와야만 합니다. 자신이 자녀에게 되기를 원하는 길과 자녀가 될 수 있는 길이 서로 일치한다면 부모님은 자신이 자녀에게 원하는 서만이 아니라 자녀가 될 수 있는 것, 둘 다 중요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부모님들이 자녀에게 되기를 바른 것과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이 같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부모님들은 자신의 소명이나 자녀들에게 원하는 것은 제쳐 놓고 자녀의 능력에 따라 그들을 도와야 합니다. 이것이 일상생활에서 어린 사람들, 제자, 학생, 아들, 딸과의 관계에서 자애를 사용하는 바른 방법입니다.
다른 관점에서 계속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종종 이 세상 사람들은 다른 이들을 위해 정말 이익이 되는 일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른 이들의 그들의 행동을 오해하거나 싫어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우리가 할 수 있는 무엇이 다른 이들에게 이익이 되기에 그들에게 말해야만 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그 시절에 그것을 말한다면 그들에게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매우 화가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상황에서 우리는 가능한 모든 반응을 받아들이며 행동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매우 화가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상황에서 우리는 가능한 모든 반응을 받아들이며 행동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미래에는 우리의 행동 때문에 매우 행복할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들이 우리가 지금 하는 행동을 싫어하더라도 미래에 그들이 얻을 이익을 알기에 우리는 그 시점에 행동해야 합니다. 이것이 형명한 자가 과거에 행동했고 지금 행동하고 있으며 미래에도 행동할 방식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방법으로 즉시 행동하는 것보다 좀 더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으로 할 수 있다면 좀 더 수용 가능한 일련의 행동을 선택해야만 합니다. 어떤 특정한 방법 외에 다른 선택이 없음을 안다면 다른 이들의 이익을 생각하며 용감하게 행해야 합니다. 미움이나 자만이 아니라 자애와 함께 우리는 그 시점에 필요한 것을 말하거나 행해야 합니다. 이것 역시 다른 이들의 이익을 위한 행동의 방법입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에게 이렇게 행할 적절한 때와 상황을 구별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이것은 또한 부처님께서 필요하실 때마다 수행하셨던 방법이었습니다. 당장 행동해야만 하는 경우에도 우리가 적합한 언어를 선택하는 것은 매우 유익합니다. 거친 언어를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대신에 듣는 이의 귀를 달래는 단어로 마해야 합니다. 이것은 중요합니다.
둘째, ‘연민’은 어떤 것인가요? 연민은 고통받는 존재에 대한 자비입니다. 누군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모습은 현명한 자들의 마음을 흔들 것입니다. 이것은 현명한 자들이 가진 마음의 천성입니다. 현명한 자들은 다른 이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는 것을 견딜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무엇인가를 하려하고, 할 수 있는 무엇이든 도우려 합니다. 그들이 고통받는 존재를 보았을 때 말이나 행동으로그 존재들의 고통을 완화시킬 수 없다면 최소한 그 존재들이 잘 되기를 마음으로 기원할 것입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누군가가 무엇인가를 잘못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을 미워하거나 싫어할 것입니다. 실제로 누군가 무엇인가를 잘못하면 그 사람은 그 행동으로 인해 고통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를 향한 싫어함이나 화냄 대신 그를 향한 연민심을 계발해야 합니다. 그를 벌주어서는 안 됩니다. 그는 미래에 고통받게 될 것입니다. 가능하다면 그가 그러한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도록 충고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혹은 다른 이들에게 잘못되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향해 가능한 큰 연민심을 계발해야 합니다. 오직 그러할 때 우리는 그들을 도울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다른 이들을 향한 자애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연민을 계발하고 그들에게 이익이 될 만한 적합한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와 만난 이들에게 유익하기를 원함에도 그때가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우리는 일 년, 이 년, 혹은 삼 년까지도 기다려야 합니다. 때때로 무엇인가를 말하기에 적합한 때를 인내하며 기다려야만 합니다. 적합한 기회가 오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다른 이들의 이익을 위해 행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인욕을 수행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그들에게 원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게 되면 자애로써 행할 수 없습니다. 욕심에 의해 행동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다른 이들을 다루는 것은 연민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우기가 면밀하게 살피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을 정말로 알 수 없고, 그의 능력도 가능성동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행동은 그에게 고통을 일으킬 것입니다. 연민 없이는 다른 이들의 이익을 위해 정말로 행할 수 없습니다. 연민과 자애는 함께 작용해야 합니다.
셋째, ‘함께 기뻐함’은 다른 이의 성공을 보고 찬사와 기쁨을 일으키고 즐기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다른 이가 성공했거나 명예를 얻었거나 또는 이익을 얻었다는 것을 들으면 질투를 느낍니다. 이ㅓ한 습관은 ‘함께 기뻐함’과 반대가 됩니다.
여러분은 친굳르의 성공에 대해 들으면 기분이 어떠한가요? ‘좋다! 좋다! 좋다!(Sādhu! Sādhu! Sādhu!)’라고 기뻐하십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매우 훌륭합니다. 그렇지 않고 질투를 느낀다면 ‘함께 기뻐함’은 여러분에게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어떤 것도 원인 없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부유하기를 원한다 해도 우리는 부유해질 수 없습니다. 과거에 우리가 부유해질 수 있는 전제 조건들을 채우지 않았다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한다 해도 소용없습니다. 어떤 것도 원인 없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이의 성공을 보며 질투하는 오래된 습관을 버리고 마음을 즉시 바꾸도록 하세요. 그들의 성공에 기뻐함을 계발하십시오. 업의 법칙에 대해 사유하고 이해하십시오. 무엇도 원인 없이 일어나지 않음을 기억하십시오. 오직 이러한 방식으로 여러분은 함께 기뻐함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처한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스스로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고 향상시키십시오, 오직 이러할 때만 여러분은 날마다 향상될 것입니다.
다른 이의 성공을 보고 함께 기뻐함을 계발하지 못하고 대신 질투하게 되면 우리는 미래에 그것의 결과를 낳을 불선업을 쌓게 됩니다. 이와 같은 업이 그것의 결과를 낳을 때 우리는 어떤 동반자도 발견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이의 성공을 보고 행복해하고 함께 기뻐한다면 이것은 여러분에게 현생의 행복을 가져올 것이고, 마음 상태를 성숙하게 할 것이며, 미래에도 행복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함께 기뻐함을 계발하고 그것을 일상에 적용해야 합니다.
넷째, ‘평정’의 뒷받침 없는 자애, 연민, 함께 기뻐함은 효과적이지 못합니다. 비록 다른 이들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기를 원하고 누군가의 고통을 없애려고 하며 다른 이들이 성공하기를 바란다 해도 여러분의 서원대로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일들은 오직 자신의 업에 따라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업의 법칙이 작동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 자신 그리고 다른 이들과 관계하여 평정을 계발하는 방법입니다. 자신과 다른 이들을 향한 평정 수행의 기반 없이는 다른 이의 이익을 위해 정말로 행동할 수 없습니다. 장기적으로 다른 이들을 유익하게 할 수 없습니다. 또한 다른 이들의 이익을 위해 행하는 가운데 대면할 수 있는 원하거나 원하지 않는 결과에 대해 평정이 없다면 우리는 고통 받게 됩니다. 평정은 마음의 가장 탁월한 상태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러한 특성을 계발해야 합니다. 이것 없이는 장기적으로 많은 이들의 이익을 위해 행동할 수 없습니다.
– 자신의 견해에서 나온 기대에서 발췌
(우 레와따 반떼 지음/ 혜정스님 옮김)